3-4 스케일업의 진짜 비용: 성장할 때 반드시 무너지는 것들

파이브가이즈는 왜 2년 만에 매각설에 휩싸였나
2023년 여름, 강남 한복판에 미국 프리미엄 버거 '파이브가이즈' 1호점이 문을 열었다. 3시간 대기 줄이 이어졌다. SNS에는 인증샷이 쏟아졌고, 재벌 3세가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한다는 소식에 업계가 술렁였다. 2년 만에 흑자를 냈다.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런데 2025년 여름, 매각설이 터졌다.
호기심은 2년을 버티지 못했다. 쉐이크쉑이 그랬고, 파파이스가 그랬고, 이름값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줄줄이 한국에서 무너진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그들은 규모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다.
"수입해서 가져오면 다 잘될 줄 알았다."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했다. 프리미엄 전략은 가성비 앞에서 무력했고, 초기의 반짝 인기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게 확장하는 과정에서 브랜드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매혹적이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마치 능력이 커진다는 뜻처럼 들린다. 매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안정된 미래로 연결될 것만 같다. 하지만 현장을 오래 바라본 사람들은 안다. 성장은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니라, 조직의 정체성이 교체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맥킨지가 수천 개 기업을 추적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제품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시장에 안착한 기업 10곳 중 8곳이 스케일업 단계에서 무너진다. 더 놀라운 건 실패 원인이다. 기술이 부족해서? 시장이 나빠서? 아니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 실패 원인의 절반 이상을 '조직 문제'로 꼽는다.
미국 스타트업 10곳 중 9곳은 결국 사라진다. 첫 해를 넘기는 기업은 5곳 중 4곳이다. 10년을 버티는 기업은 3곳이 채 안 된다.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이 되는 확률은 1%도 안 된다. 그런데 유니콘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 유니콘을 유지하는 것이다.
스케일업이 시작되는 순간, 기업은 더는 이전의 기업이 아니다. 문화도 달라지고, 감각도 무뎌지고, 속도도 느려지고, 품질도 흔들린다. 마치 작은 생명체가 갑자기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처럼, 기업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다.
1. 속도의 붕괴: 큰 조직은 빠를 수 없다
작은 조직의 가장 큰 힘은 속도다. 창업자가 결정하면 즉시 움직인다. 고객 피드백이 오늘 들어오면 내일 반영한다.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즉각 반응한다. 이 빠른 속도는 단순한 실행력이 아니다. 브랜드의 감각, 제품의 품질, 고객 경험의 통일성, 모든 것이 속도에서 나온다.
국내 2호 유니콘 옐로모바일의 교훈
국내 2호 유니콘이었던 옐로모바일을 기억하는가.
90억원 매출이 2년 만에 3천억원이 됐다. 30배가 넘는 성장이다. 기업가치는 4조원까지 치솟았다. 문어발식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불렸다. 그런데 2017년부터 5년 연속 회계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받았다. 옐로모바일은 무너졌다. 양적 팽창 속에서 품질 통제가 사라지고, 의사결정 체계가 마비됐다.
💡 핵심 인사이트
맥킨지가 200개 넘는 기업을 분석한 결과는 명확하다. 스케일업에 실패한 기업 10곳 중 7곳은 최소 한 가지 핵심 영역에서 무너졌다. 더 흥미로운 건, 7개 차원 중 6개를 잘해도 소용없다는 점이다. 단 하나의 영역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의사결정 체인이 늘어난다. 보고 라인이 복잡해진다. 하루면 되던 일이 일주일 걸린다. 담당자 간 합의를 위해 회의가 반복된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확장이 결국은 느린 조직, 둔감한 조직, 신중한 척하는 조직을 만든다.
한국 유니콘의 현실
- 한국 유니콘 절반 이상이 적자
- 67조원 위워크, 14조원 조달하고도 파산
- 글로벌 유니콘 중 한국 비중: 2.2% → 1.2% (절반으로 감소)
- 2024년 신규 유니콘: 전 세계 75개, 한국 0개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건 불편함이 아니라, 브랜드 경쟁력이 갉아먹히는 손실이다. 고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쟁자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장 변화는 둔해진 조직을 배려하지 않는다.
스케일업은 대부분 "더 빨라지려는 성장"이 아니라 "속도를 잃는 성장"이 된다.
2. 품질의 흔들림: 확장은 반드시 균열을 만든다
2022년, 한 예비유니콘 기업이 대형 식품 유통 업체를 인수하며 시장의 기대를 모았다. 3천억원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2025년,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한때 3천억원이었던 명품 플랫폼도 같은 해 무너졌다.
📊 2024년 스타트업 폐업 현황
- 투자 받은 스타트업 163곳 폐업
-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
- 대부분 '차세대 유니콘'으로 불렸던 기업
- 매출 둔화 + 고정비 증가 + 자본 잠식
"기술력보다 외형 성장에 집중한 투자를 돌아보게 된다."
프랜차이즈 시장이 보여주는 진실
프랜차이즈 시장은 이 붕괴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1만 개가 넘는다. 그런데 가맹점 100개 이상 보유한 대규모 브랜드는? 겨우 500개다. 전체의 4%다.
- 가맹점 10개도 안 되는 영세 브랜드: 70% 이상
- 기업 평균 수명: 7년 미만
- 브랜드 평균 수명: 6년 미만
치킨 프랜차이즈의 제로섬 게임
치킨 프랜차이즈는 더 극단적이다. 600개가 넘는 치킨 브랜드가 있지만, 실제로 가맹점이 있는 브랜드는 절반을 조금 넘는다. 2022년 한 해 동안 4천 개가 넘는 치킨집이 문을 닫았다.
2023년 치킨집 개폐점 현황
개점률 13.6%, 폐점률 12.1%. 차이가 1.5%포인트다. 새로 문 여는 가게와 문 닫는 가게 수가 거의 같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기존 자영업자와 신규 자영업자가 서로 경쟁하다 하나가 죽는 제로섬 게임이다.
품질은 작은 팀일 때 가장 강하다. 소수가 직접 보고, 만지고, 확인한다. 감각을 공유하고, 기준을 나누고, 잘못되면 즉시 고친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 품질은 '사수되는 것'에서 '관리되는 것'으로 바뀐다.
작을 때 품질은 문화였다. 확장하면 품질은 문서가 된다. 문서가 되는 순간 품질은 이미 본질을 잃는다.
3. 감정의 소멸: 고객이 데이터가 되는 순간
작은 브랜드는 고객을 기억한다. 고객도 브랜드를 기억한다. 이 관계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강한 충성도를 만든다. 그런데 스케일업이 시작되면 고객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데이터'가 된다.
한국 유니콘이 잃어버린 것
한국 유니콘의 글로벌 비중은 절반으로 줄었다. 한국 기업가치는 12% 올랐지만, 같은 기간 글로벌은 184% 폭증했다. 문제는 양적 성장에만 집중하면서 브랜드 감각과 고객과의 관계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사례: 국내 반도체 유니콘 파두
2023년, 국내 최초 반도체 유니콘 파두가 상장 3개월 만에 '뻥튀기' 의혹에 휩싸였다. 매출이 3억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연간 1,200억원을 예상했는데 턱없이 낮았다. 파두 사태는 유니콘 환상을 깼다.
"스타트업은 현재 가치보다 30%를 깎고 봐야 한다."
치킨 시장에 드러난 감정 붕괴
전국 치킨집은 3년 연속 감소해 3천 개가 사라졌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5천 개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치킨집 중 프랜차이즈 비율: 60% → 75% (외식업종 중 최고)
- 치킨 브랜드 63%는 가맹점 10개도 안 되는 영세
- 100개 이상 보유: 8.5%
- 2천 개 넘는 브랜드: 단 2곳
코로나를 거치며 배달 시장이 폭발했다. 중소 브랜드는 더 어려워졌다. 배달앱과 대형 브랜드가 손잡고 할인 프로모션을 쏟아냈다. 소비자는 익숙한 브랜드를 선택하고, 대형은 자본력으로 밀어붙인다.
배달 경제의 역설
배달 주문이 늘어날수록 본사와 플랫폼만 배를 불린다. 점주 수익은 악화되고, 마트 냉동식품이 프랜차이즈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점주와 고객은 피폐해진다.
확장으로 인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품질이 아니다. 고객과의 감정적 거리다. 브랜드가 고객에게서 멀어지고, 멀어진 순간 고객은 다른 선택지를 찾는다. 감정이 사라진 브랜드는 가격 경쟁에 내몰린다.
4. 결론: 작게 머물기 위해 싸워라
2025년 여름까지 전 세계에서 75개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다. 미국 40곳, 중국 16곳. 한국은 0곳. 그런데 유니콘이 되는 것과 유니콘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성장 속도보다 중요한 건 기업가치를 유지하고 키우는 것이다."
맥킨지 데이터는 더 냉정하다. 기업이 초기 성공 후 스케일업에 성공하는 비율은 22%다. 10곳 중 8곳은 무너진다. 그런데 맥킨지가 직접 지원한 35개 기업은 성공률이 60%까지 올라갔다.
스케일업이 침식하는 6가지
- 속도가 무너진다 -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시장 대응력 상실
- 품질이 흔들린다 - 일관성 붕괴, 고객 불만 증가
- 감정이 소멸한다 - 고객이 데이터가 되고 브랜드가 선택지로 전락
- 정체성이 희석된다 - 브랜드 세계관과 문화 소실
- 고정비가 늘어나며 경직된다 - 현금 소진 가속화
- 구조적 피로가 쌓인다 - 방향 전환 능력 상실
측정되지 않는 손실이 가장 치명적이다
브랜드의 감각, 문화, 일관성, 세계관, 고객과의 관계. 이 모든 건 숫자가 아니라서 손실이 측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측정되지 않는 손실이야말로 브랜드를 가장 강하게 흔든다.
✅ 성공 사례: 교촌치킨
교촌치킨이 업계 평균 폐점률 14%에 비해 1%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외형 확장보다 내실을 택했기 때문이다. 신규 출점을 적극적으로 하면 본사 이익은 커진다. 그런데 교촌은 제품 품질, 브랜드 이미지, 상권 보호를 더 중요하게 봤다.
작은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은 "언제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다.
"어디까지 작게 있을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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