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못생긴 당근이 더 비싼 시대
시장에 가면 사람들은 오랫동안 같은 행동을 해왔다.
반듯한 사과, 매끈한 오이, 흠집 없는 당근을 골라 담았고, 조금만 찌그러지거나 색이 고르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손이 멈추곤 했다. “왠지 덜 신선해 보인다”라는 판단이 먼저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라인몰과 동네 마켓, 구독 서비스에서 ‘못난이 박스’, ‘어글리 박스’라는 이름으로 모양이 삐뚤빼뚤한 채소들이 하나의 독립된 상품군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내 설문 조사 결과, 최근 6개월 안에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응답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그 이유로 “고물가 시대의 합리적인 선택”, “환경을 고려한 소비”가 함께 언급되었다.
못난이 농산물 정기배송 서비스 ‘어글리어스’는 출시 후 3년이 채 되기 전에 누적 매출 100억 원, 누적 판매량 150만 kg, 재구매율 80%대 후반이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가입자의 상당수는 2030 세대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못 생겼지만 값이 저렴한 상품”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장이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하나는 물가가 크게 오른 시기에 등장한 “조금 덜 예쁘지만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경제적 서사였고,
다른 하나는 “버려질 뻔한 것을 살려낸다”는 환경·윤리적 서사였다.
이 장의 제목인 “못생긴 당근이 더 비싼 시대”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못생긴 것이 항상 더 비싸다”는 가격 정보가 아니다. 한때는 “값을 깎기 위한 이유”였던 흠이 이제는 “부가가치를 설명하는 언어”로 쓰이게 되었다는 의미에 가깝다. 같은 당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조금 싸게 사는 통로”가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스토리”가 되었다.
완벽한 규격이 만든 쓰레기, 알고리즘의 그림자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약 3분의 1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지 못하고 버려진다는 추정치는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가운데 과일과 채소는 낭비 비율이 특히 높은 품목군에 속한다. 생산에서 유통, 소매 단계까지 내려오는 동안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걸러지는 물량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요한 점은, 소위 ‘못난이 당근’이 처음부터 못난이였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밭에서 막 수확된 농산물의 모습은 본래 다양했다. 길쭉한 것, 동그란 것, 살짝 휘어진 것, 색이 고르게 들지 않은 것까지 모두 자연스러운 변이였다.
그러나 유통 단계가 시작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대형 유통망에서는 각 품목마다 세세한 규격이 설정되었다. 길이, 직경, 색의 균일도, 흠집 허용 범위 등이 숫자로 정의되었고,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자동으로 “규격 외”로 분류되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AI와 컴퓨터 비전 기술이 깊숙이 개입하였다.
과거에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선별하던 과정을 이제는 카메라와 알고리즘이 대신 수행한다. 과일·채소의 색, 크기, 모양, 표면의 흠집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등급을 나누고, 기준에서 벗어나는 개체는 즉시 라인에서 밀려나도록 설계되었다.
딥러닝 기반 이미지 분석 기술은 과실의 외관 결함을 사람보다 높은 정확도로 판별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식품 산업에서는 이런 기술을 통해 “완벽한 품질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하였다. 실제로 부패, 병해, 심각한 상처를 빠르게 걸러내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주목하는 지점은 그 다음 단계이다.
AI 기반 품질 관리 시스템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구분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때 정상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정의한 규격, 다시 말해 ‘시장에 내보내도 될 만큼 예쁜 모양’에 맞춰져 있다. AI는 그 기준을 더 빠르고 더 엄격하게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 결과, 맛과 영양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모양이 고르지 않거나 표면에 작은 흠집이 있는 농산물들이 “결함”이라는 이유만으로 폐기되는 속도가 오히려 더 빨라지는 역설이 발생하였다. 품질 관리의 최적화가 안전과 일관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용 가능한 자원을 쓰레기로 전환하는 속도까지 함께 끌어올린 것이다.

못난이 농산물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싸게 살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AI와 알고리즘이 설계한 완벽한 규격의 세계에서, 이 규격 자체를 다시 묻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를 불량으로, 어디부터를 개성으로 볼 것인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못난이 농산물을 비즈니스로 만든 사람들
못난이 농산물을 브랜드로 재발견한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인터마르셰(Intermarché)의 캠페인이었다.
이들은 기존에 버려지던 기형·흠집 과일과 채소에 “추한 감자, 못생긴 당근, 실패한 레몬”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매장 한가운데에 전용 진열대를 설치해 “정상 상품보다 3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였다.
결과는 매우 분명하였다.
시범 매장에서는 이 못난이 상품이 이틀 만에 1톤이 넘게 팔렸고, 캠페인 기간 동안 매장 방문객 수와 과일·채소 매출이 동시에 증가하였다. “못생겨도 맛은 같다”는 메시지가 소비자의 합리성과 윤리 의식을 동시에 자극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Imperfect Foods와 Misfits Market 같은 스타트업이 못난이 농산물을 정기배송 서비스로 만든 대표적 사례였다. 이들은 “정상 유통에서 밀려난 식품을 다시 순환시키는 것”을 핵심 미션으로 내세웠고, 수억 파운드 규모의 식품을 폐기 대신 소비로 전환했다고 보고하였다.
국내에서도 흐름은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매년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모양·크기·색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못난이’라는 낙인이 찍혀 버려졌다. 이 틈에서 등장한 것이 못난이 농산물 정기배송 서비스와, 이를 활용하는 동네 그로서리 숍, 제로 웨이스트 카페들이었다.
어글리어스 같은 서비스는 산지와 직접 거래하는 구조를 통해 규격 외 농산물을 수집하였고, “환경 가치 + 합리적 가격”이라는 메시지로 MZ세대의 호응을 얻었다. 일부 동네 마켓은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 별도의 메뉴를 개발하고, 이를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못난이 농산물이 항상 “싸게 파는 상품”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형마트의 기획전에서는 정상 상품보다 20~30% 저렴하게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도시의 라이프스타일 숍이나 카페에서는 못난이 농산물을 사용한 메뉴가 “지속가능한 선택”이라는 스토리와 함께 큰 할인 없이 제공되는 사례도 발견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버려졌을 농산물이 이제는 매출과 투자, 브랜드 자산의 원천이 되기 시작하였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라지던 것”이 “못생겼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으로 뒤집힌 셈이다.
AI 최적화 시대, 일부러 흠집을 남기는 전략
이제 이 모든 이야기를, 이 책 전체의 출발점인 AI 최적화 시대와 다시 연결할 차례이다.
AI는 본질적으로 오차를 줄이는 기술이다.
컴퓨터 비전 기반 선별 시스템은 색·모양·크기의 미세한 차이를 인간보다 더 잘 감지하고, 규격에서 벗어나는 개체를 빠르게 걸러내도록 작동한다. 이때 알고리즘이 수행하는 역할은 이 책에서 말하는 최적화의 장벽(Optimization Barrier)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변이를 제거하고, 시스템의 효율과 일관성을 극대화하는 것.

그 결과 진열대 위에는 “서로 거의 구분되지 않는 완벽한 상품들”만 남게 되었다.
반대로, 못난이 농산물을 선택한 브랜드들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모든 변이를 제거하는 것이 옳은가?
조금 삐뚤고, 조금 흠집 난 것들까지 모두 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낭비가 아닌가?
완벽한 균일성 대신, 어느 정도의 결함과 편차를 시스템 안에 남겨두는 편이 오히려 전체 사회적 효율을 높이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는 단순한 감성 마케팅을 넘어서는 몇 가지 층위가 존재하였다.
첫째, 의도된 결함은 데이터만으로 복제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터마르셰가 못난이 채소에 붙인 “추한 감자, 못생긴 당근, 실패한 레몬” 같은 이름은 단순한 카피가 아니었다. 매장 중앙에 전용 진열대를 설치하고, 전용 캠페인을 설계하여 “이들은 부끄러운 실패작이 아니라 소비자가 구해낸 주인공”이라는 서사를 부여하였다. 이는 통계적 최적화라기보다 태도의 문제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둘째, 못난이 농산물을 둘러싼 신뢰는 시간의 체화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정기배송 서비스가 높은 재구매율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이 서비스가 ‘한 번 구경해 볼 만한 상품’이 아니라 산지와의 거래 방식, 검수 기준, 포장, 클레임 처리,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등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쌓인 결과라는 뜻이었다. 이런 시간과 관계망은 숫자로 요약할 수는 있어도, 그대로 복제하기는 어렵다.
셋째, 진정성의 문제가 있었다.
못난이 농산물은 소비자에게 일종의 도덕적 만족감을 제공하였다. “버려질 뻔한 것을 내가 구했다”는 감각, “환경에 조금은 덜 나쁜 선택을 했다”는 자기 인식이 뒤따랐다. 실제로 비정형 과일·채소 소비가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에 기여한다는 연구들도 발표되었다.
그러나 소비자는 금세 본질을 구분하였다.
이것이 실제로 공급망을 바꾸려는 시도인지, 아니면 잠깐의 홍보용 이벤트인지에 대한 판단은 AI가 생산한 카피와 캠페인보다 브랜드의 실제 선택과 투자에서 드러났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인증의 문제(Authentication Problem)였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은 결국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택에서 출발하였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인간이 정해 준 기준 안에서만 움직인다. “이 정도 흠집은 허용한다”는 기준, “농가의 소득과 환경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상품으로 남겨야 한다”는 판단은 알고리즘이 대신 내려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AI가 강력해질수록,
인간이 스스로의 기준을 더 명확히 언어로 선언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못생긴 당근이 더 비싼 시대라는 말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집약된다.

우리는 무엇을 ‘결함’이라 부를 것인가.
어디까지를 ‘버릴 것’으로, 어디부터를 ‘브랜드의 개성’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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