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숫자 없는 경영: AI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성공을 재야 하는가
1. 숫자가 너무 많아진 시대, 진짜 중요한 건 사라지고 있다
지금 대부분의 회의실 풍경은 비슷하다. 대형 화면에는 매출, 전환율, 이탈률, NPS, LTV 같은 지표들이 그래프로 떠 있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말이 거의 주문처럼 반복된다. 여기에 AI까지 합류하면서, 숫자는 더 정밀해지고 더 빠르게 계산된다. “어느 고객이 언제 이탈할지”, “어떤 타이밍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구매 확률이 오를지”까지 예측해 주는 시대다.

문제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숫자가 목표가 되는 순간이다. 원래 숫자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는데, 언젠가부터 “이 숫자만 맞추면 된다”는 생각이 조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당장 눈에 잡히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이 결정이 10년 뒤에도 얼굴 들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인지”, “직원들이 이 회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고객이 친구에게 이 브랜드를 소개하고 싶은지” 같은 질문은 슬그머니 밀려난다.
AI는 이런 숫자 중심 경영을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알고리즘에게 세상은 결국 손실 함수를 최소화하는 게임이다. “클릭을 최대화하라, 비용을 최소화하라, 이탈률을 낮춰라”처럼 잘 정의된 목표는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비움이나 모자람, 불균형조차 “전략적인 장치”로 설계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출발점은 다르다. AI도 비움·모자람·불균형을 전략으로 말해줄 수 있지만, 그 방향을 처음 감수하겠다고 결정하는 태도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숫자 없는 경영은 숫자를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숫자를 앞에 두지 않고, 뒤에서 참고하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2. 숫자가 목표가 되는 순간 벌어지는 일
미국 대형 은행 웰스파고(Wells Fargo)는 “한 고객에게 얼마나 많은 상품을 파느냐”를 핵심 지표로 삼았다. 지점과 직원마다 공격적인 목표가 주어졌고, 이 숫자를 맞추지 못하면 인사상 불이익이 생겼다.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고객 동의 없이 예금·신용카드 계좌가 대량으로 개설됐고, 수백만 개의 가짜 계좌가 만들어졌다. 결국 이 은행은 막대한 벌금과 소송 비용, 그리고 신뢰 붕괴라는 대가를 치렀다.

처음에 이 지표는 그럴듯했다. “한 고객당 더 많은 상품 = 관계 심화 = 수익성 증가”라는 논리는 엑셀에서는 너무나 합리적이다. 하지만 숫자가 목표가 되는 순간, 현실은 그 숫자에 맞춰 왜곡되기 시작한다. 굿하트의 법칙이 말하듯,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더 이상 좋은 지표가 아니다.”
여기서 AI를 올려보면 그림이 더 선명해진다. AI는 이런 KPI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 어떤 고객 세그먼트가 더 설득되기 쉬운지, 어떤 시간대에 어떤 채널을 쓰면 반응률이 높아지는지까지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 자체가 건강한지, 이 숫자가 사람을 어떻게 몰아붙이는지” 에 대해서는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다.
숫자 없는 경영은, 여기서 질문을 한 번 더 던지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리고 “그 성공을 정말 이 숫자로만 재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다.
3. 숫자를 앞세우지 않는 회사들은 무엇을 다르게 했나
스웨덴 은행 핸델스방켄(Handelsbanken)은 “지점별 매출 목표, 개인별 판매 목표, 연간 예산”이 없는 은행으로 유명하다. 각 지점은 지역 특성을 잘 아는 작은 사업체처럼 운영되고, 직원은 개인 성과급 대신 은행 전체 성과를 기준으로 이익을 함께 나눈다. 지점에 내려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신뢰받는 은행인가, 아닌가.”

이들은 숫자를 쓰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숫자를 직원 개인의 생존과 직접 연결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카드 몇 장 더 팔았는가”보다 “이 고객에게 지금 이 상품이 정말 필요한가”를 묻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흥미롭게도, 이 방식은 장기적으로 경쟁 은행보다 더 안정적인 수익성과 높은 고객 만족으로 연결되었다.
네덜란드의 방문 간호 조직 부르츠조르그(Buurtzorg)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조직은 10~12명 규모의 간호사 팀이 스스로 스케줄을 짜고, 환자와의 일을 직접 조율하는 자율조직 모델을 택했다. “간호사 1인당 처리 건수” 같은 지표를 앞세우는 대신, “환자가 최대한 오랫동안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게 돕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단기적으로 보면 비효율처럼 보인다. 한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서류 대신 대화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데 장기 데이터를 보면, 불필요한 입원과 응급실 방문이 줄어들면서 시스템 전체의 비용이 낮아지고 환자 만족도는 오히려 올라갔다.
AI는 이 사례들을 깔끔하게 요약해 줄 수 있다. “분권형 조직과 정성적 목표가 장기 성과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결론도 어렵지 않게 낼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들이 처음 출발할 때, 그런 데이터는 없었다. 출발점은 항상 같은 문장에 가깝다. “우리는 사람을 숫자만으로 보지 않겠다.”
4. AI 시대, 무엇을 끝까지 숫자로 만들지 않을 것인가
AI 시대의 경영자는 하나의 유혹과 마주하게 된다. “AI가 가장 잘 아는 방향으로, 숫자가 가장 예쁘게 나오는 쪽으로 가면 안전하지 않을까?” 숫자 없는 경영은 그 유혹을 완전히 거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어떤 것만큼은 끝까지 숫자로 만들지 않을 것인가?”

예를 들어, 직원이 실패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고객이 불편함을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관계, 지역사회에서 “괜찮은 회사”라고 불리는 평판은 쉽게 KPI로 떨어지지 않는다. AI는 이런 것들이 결국 재무지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중에 분석해 줄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지키겠다고 결정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데이터가 이렇게 말하니, 이 정도 윤리와 철학은 허용해보자”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싶은 윤리와 철학이 있으니, 그 안에서 데이터를 최대한 잘 쓰자”는 순서다. AI는 후자보다 전자에 훨씬 최적화된 도구다. 그래서 더더욱, 경영자가 이 순서를 의식적으로 되짚어 봐야 한다.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성공을 어떻게 측정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갖고 있는 회사만이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숫자는 필요하지만, 숫자가 전부가 아닌 경영.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숫자 없는 경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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