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2 AI 시대, 진짜 기회는 ‘비고객’에게 있다
요즘 회의실은 비슷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대형 화면에는 전환율, 재방문률, 이탈률 그래프가 떠 있고, 그 옆에는 AI가 분석한 인사이트가 정리돼 있다. “어떤 문구를 써야 클릭이 오르는지”, “어떤 고객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알고리즘이 꽤 정확하게 알려준다. 겉으로 보면 ‘데이터 기반, AI 기반 의사결정’처럼 보이기 때문에 안심하기 쉽다.

하지만 이 글은 조금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다. AI는 본질적으로 “행동이 기록된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도구다. 이미 우리 서비스를 써 본 사람, 클릭을 한 번이라도 남긴 사람, 장바구니까지 갔다가 멈춘 사람들의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AI는 더 똑똑해진다. 반대로 말하면,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 여러 번 실망하고 떠난 사람들, 구조적으로 접근조차 못 하는 사람들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시야 밖에 남는다.
AI도 물론 비움, 모자람, 불균형 같은 것을 전략으로 제안할 수 있다. “일부러 기능을 덜어내라”, “일부 고객은 과감히 포기하라”는 식의 답을 충분히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길을 정말로 감수하겠다고 결정하는 태도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이 차이를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AI가 잘 보이는 고객”만을 위해 회사를 설계하게 된다. 이때 빠져나가는 거대한 영역이 바로 비고객이다.
비고객이란 누구인가: 데이터 밖에 있는 사람들
비고객은 단순히 “아직 우리 제품을 안 산 사람”이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 가깝다. 처음부터 이 카테고리를 자기 삶과 무관하다고 느끼는 사람, 과거에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실망하고 돌아서서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 가격·언어·문화·제도 때문에 애초에 접근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은 로그에 남지 않고, AI 모델의 학습 데이터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기본적으로는 “이미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최적화되는 경향이 있다. 추천 알고리즘은 기존 고객의 취향을 더 잘 맞추고, 퍼포먼스 마케팅은 이미 반응해 본 사람들을 비슷한 사람들 쪽으로 ‘확장’하는 데 탁월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장 점유율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더 강하게 묶이는 구조다.
이때 필요한 시선이 “비고객의 경영학”이다. 데이터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들은 우리를 쓰지 않는가”를 묻는 태도다. AI도 이런 질문을 따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질문을 처음 던지는 의도와 태도는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디자이너가 아니었던 사람들: 캔바가 발견한 비고객
그래픽 디자인 도구 시장을 보면 오랫동안 전문가를 위한 세계였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는 강력했지만, 초보자가 접근하기에는 복잡했다. 학교 과제 포스터를 한 번 만들어야 하는 학생, 홍보물을 만들어야 하는 동아리 회장, 배너 한 장이 필요한 소상공인은 종종 “디자인 좀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대충 텍스트만 적힌 이미지를 쓰고 말았다.

이들이 바로 디자인 툴의 비고객이었다.
호주에서 시작된 캔바(Canva)는 이 공백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전문 디자이너를 어떻게 더 고급스럽게 도울까”가 아니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 툴을 아예 켜보지도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열리고, 템플릿을 고르고, 드래그앤드롭으로 옮기기만 해도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었다.
캔바는 이제 전 세계 수억 명이 쓰는 플랫폼이 되었고, 최근에는 자체 생성형 AI 기능까지 도입해 “텍스트만 입력해도 자동 디자인”을 제안하는 단계에 왔다. 여기서 AI가 하는 일은 명확하다. 이미 들어와 있는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템플릿이 더 자주 쓰이는지, 어떤 배치가 업종별로 반응이 좋은지, 무엇을 추천하면 클릭률이 오르는지 최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처음 시장을 연 순간을 떠올려보면, 핵심은 여전히 숫자가 아니라 질문이다. “디자인을 포기한 사람들”, “늘 남에게 부탁하던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이들을 위한 도구를 새로 설계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데이터가 거의 없다. 로그에는 “서비스에 아예 들어오지 않은 사람”의 감정이 기록되지 않는다. 이 공백을 메우는 것은 여전히 관찰, 인터뷰, 상상 그리고 “한 번도 우리 고객이 아니었던 사람들을 초대하겠다”는 경영자의 선택이다.
AI도 캔바의 성공을 분석하고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왜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비고객을 향해 방향을 틀어보겠다는 의도와 태도는 코드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AI가 제안하는 전략”과 “AI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의 가장 큰 차이다.
게임을 안 하던 사람들을 거실로 부른 Wii
닌텐도 Wii는 비고객의 경영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기 어려운 사례다. Wii가 나오던 시기의 콘솔 시장 키워드는 그래픽 성능과 처리 속도였다. 경쟁사들은 더 현실적인 화면, 더 무거운 게임, 더 빠른 하드웨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닌텐도는 정반대 질문을 던졌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 게임을 하지 않을까.” 패드를 쥐면 손이 굳어버리는 부모 세대, 게임을 폭력적이고 복잡한 세계로 느끼는 사람들, “나는 게임이랑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이들을 떠올렸다. 그 질문에서 나온 해답이 몸을 움직이는 모션 콘트롤이었다.
복잡한 버튼 대신 리모컨을 휘두르면 테니스 라켓이 되고, 볼링공이 되는 방식.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Wii 스포츠를 하며 웃는 장면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졌다. 이전까지 게임 데이터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주말 저녁의 중심이 되었다.
AI 관점에서 보면 초기의 Wii 전략은 설명하기 어렵다. 기존 콘솔 헤비 유저들의 플레이 시간, 구매 패턴, 선호 장르를 넣고 계산하면 자연스러운 답은 “이 핵심 고객을 더 깊게 공략하라”는 쪽이다. 비고객을 향한 콘솔은 데이터가 부족하고, 수요 예측도 어렵고, 기존 팬을 잃을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닌텐도가 그 길을 택한 이유는, 처음부터 “지금 이 방에 없는 사람들”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게임을 꺼리던 사람들의 표정, 몸짓, 웃음소리를 먼저 떠올린 뒤 제품과 경험을 설계했다. 이 단계에서는 AI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적의 정답”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을 감수하겠다는 의도였다.
AI 시대, 비고객을 상상하는 힘이 남겨진 자리
AI는 기존 고객을 이해하는 데 탁월하다. 이미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더 잘 읽고, 그들에게 맞춘 메시지와 경험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심지어 비움, 모자람, 불균형 같은 요소도 “전략적 장치”로 포장해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

략을 실제로 감내하겠다고 결정하는 것, 처음에 왜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는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이다.
비고객의 경영학은 숫자와 결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전제 조건에 가깝다. 데이터로 보이는 패턴이 “이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바깥을 상상해야 한다. 우리의 상품을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사람들, 여러 번 상처받고 돌아선 사람들, 구조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

AI도 언젠가 “비고객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초대하겠다”는 말은 AI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비고객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순간에는 언제나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 불안을 끌어안고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AI 시대에도 서로 다른 브랜드와 서로 다른 기업을 남겨 줄 마지막 차이일지 모른다.
결국 이 장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누구를 끝까지 잊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회사만이, AI가 만든 완벽한 획일화의 시대에도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양들의 행진 (Sheep Parade) > 제7장: 역설의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의 인간 중심 가치와 철학 (0) | 2025.11.23 |
|---|---|
| 당신만의 역설(Paradox)을 설계하라: (0) | 2025.11.23 |
| 숫자 없는 경영: AI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성공을 재야 하는가 (0) | 202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