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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행진 (Sheep Parade)/제1장: 전략의 죽음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한 브랜드

1-1. 전략이 넘쳐나는 시대의 역설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한 브랜드

거절당할 운명의 제안
투자자 앞에 선 창업자를 상상해보라. 그는 안경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계획은 처음부터 모든 상식을 벗어나 있다. “저는 안경을 프리미엄 가격에 판매할 겁니다. 기존 안경점 유통망은 전혀 활용하지 않을 것이고, 온라인 채널도 당분간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수백억을 들여 미술관 같은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작품을 전시하듯 제품을 선보이려 합니다.”

무모한 아이디어의 시작


이 제안서를 받는다면 당신은 투자하겠는가? 대부분의 투자자는 거절할 것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이 사업 모델은 유통 효율성도, 가격 경쟁력도, 접근성도 부족하다. 그러나 바로 이 방식으로 세계 시장을 뒤흔든 브랜드가 있다.

괴물의 탄생, 7,891억 원의 신화

젠틀몬스터의 2024년 매출은 7,891억 원, 영업이익은 2,338억 원으로 3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컬리, 에이블리, 무신사 등과 비교해도 월등하다. 국내 토종 패션 브랜드 중 글로벌 럭셔리 반열에 오른 유일한 사례다.
특히 원가율 16%, 재고 회전율 2.75회라는 수치는 명품 수준이다. 소비자들은 30만 원의 선글라스를 기꺼이 구입하며, 이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감정’을 사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 효과와 유통의 역전

2014년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착용한 ‘DiDiD’ 모델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젠틀몬스터는 아시아 전역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브랜드와 달리 젠틀몬스터는 유통을 확장하지 않고 오히려 700곳에서 80곳으로 줄였다. 불편함을 전략화한 것이다. 샤넬, 에르메스처럼 접근성을 제한해 희소성을 극대화했다.

매장이 아닌 갤러리, 제품이 아닌 경험

젠틀몬스터 매장은 갤러리이자 실험실이다. 홍콩의 핑크 로봇팔, 상하이의 미래주의적 설치물 등은 모두 ‘판매’가 아니라 ‘체험’을 위해 설계됐다. 브랜드는 광고보다 공간을 자산으로 여긴다. 매출 대비 광고비는 4% 수준이지만 인테리어 투자액은 명품 수준이다. 소비자는 제품이 아닌 ‘감각의 경험’을 소비한다.

 

감각의 공간

제니 효과와 50배 성장의 비밀

2020년 이후 블랙핑크 제니와의 협업 프로젝트 ‘젠틀홈–젠틀가든–젠틀살롱’이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자매 브랜드 탬버린즈는 5년 만에 50배 성장(매출 34억 → 1,646억 원), 누데이크는 카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젠틀몬스터는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브랜드 제작 시스템’이다.

 

룩소티카와 구글이 주목한 이유

2025년 룩소티카는 젠틀몬스터 지분 20%를 확보했고, 구글은 1,450억 원을 투자해 스마트글래스 디자인 파트너로 선정했다. 구글이 원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쿨함’이었다. 젠틀몬스터는 공장을 팔지 않았다. 감각을 팔았다.

완벽함의 역설과 불완전함의 힘

대부분의 기업은 효율을 계산하고,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젠틀몬스터는 정반대였다. 완벽한 전략이 모두를 닮게 만든다면, 불완전한 전략은 차별성을 만든다. 젠틀몬스터는 ‘감정이 설레는가’를 기준으로 내부 검열을 한다. 전략이 아닌 감정의 질서를 설계했다.

 

브랜드는 결국 인간의 감정이다

소비자는 제품이 아닌 ‘젠틀몬스터를 쓴 나’를 산다. 브랜드는 메시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을 표현하도록 돕는 매개다. 김한국 대표는 말한다. “지금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인정받을 도전을 하라.” 완벽한 전략이 아니라 감정의 질서를 믿은 결과, 젠틀몬스터는 샤넬과 톰포드를 제치고 국내외 브랜드 평판 1위를 기록했다.

5천만 원에서 2조 원으로

2011년 5천만 원에서 시작한 회사가 2025년 기업가치 2조 원을 돌파했다. 완벽한 전략 대신 불완전한 질문이 혁신을 이끌었다. “왜 안경은 안경점에서만 팔려야 하는가?” 이 질문이 산업의 규칙을 무너뜨렸다. 젠틀몬스터는 감정을 디자인하고 경험을 판매했다.

 

감각이 만든 브랜드 제국

불완전함이 만든 완벽한 결말

젠틀몬스터의 성공은 전략의 산물이 아니라, 전략의 결핍을 전략화한 결과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인간적이었고, 예측 불가능했기에 매력적이었다. 그 불완전함이 감정의 힘을 자극했고, 그것이 브랜드를 완성시켰다. 완벽함은 안전하지만, 혁신은 언제나 불완전함에서 시작된다.

2025년, 구글의 투자와 룩소티카의 지분 확보로 젠틀몬스터는 전 세계 30개국에 진출했다. 그리고 이 모든 수치는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왜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이다.
“우리는 다르게 해야 한다. ”


💡 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용기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게 될 것을 먼저 만드는 것. 젠틀몬스터는 그 용기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