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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행진 (Sheep Parade)/제2장: 고객의 배신

고객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모른다.

2-1.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라.”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비즈니스 서적, 멘토의 강연마다 반복되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원칙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다. 고객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모른다.

 


헨리 포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했을 것이다.” 혁신의 상징처럼 인용되는 이 문장은 사실 헨리 포드의 말이 아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Patrick Vlaskovits는 이 인용의 출처를 추적했지만, 포드의 자서전이나 공식 기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문장이 처음 등장한 건 포드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2001년, 한 영국 마케팅 잡지의 편지란이었다.

오히려 포드가 실제로 한 말은 정반대였다. 데일 카네기의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에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공의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에 있다.”

즉, 포드는 고객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이 이해하려 했던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의 진짜 의도

헨리 포드 대신 인용되는 인물이 스티브 잡스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잡스의 유명한 말이지만, 종종 오해된다. 그가 말한 요점은 “고객의 말을 무시하라”가 아니다. 그는 고객이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라고 강조했다.

애플은 고객 피드백보다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중시했다. 사용자가 어디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어떤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했다. 잡스가 거부한 것은 포커스 그룹이었지, 고객 관찰이 아니었다.


고객이 말하는 것과 진짜 원하는 것의 간극

고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답은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 Netflix의 초기 사례가 그 대표적 예다.

1990년대 후반, 비디오 대여 시장의 절대 강자는 Blockbuster였다. 그 시대 고객들에게 “무엇을 개선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대부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Netflix vs Blockbuster

 

  • “더 가까운 곳에 매장이 많으면 좋겠어요.”
  • “연체료를 좀 낮춰주세요.”
  • “신작 재고를 더 확보해주세요.”

Blockbuster는 실제로 이 요구들을 충실히 반영했다. 하지만 Netflix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전혀 다른 문제를 봤다. 고객이 진짜로 원한 것은 “원하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쉽게 보는 자유”였다.

그 결과 Netflix는 DVD 우편 대여와 월정액제를 도입하고, 나아가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2000년 Netflix가 재정 위기로 Blockbuster에 회사를 매각하려 했을 때, Blockbuster CEO는 “닷컴 광풍은 과장”이라며 거절했다. 10년 뒤, Blockbuster는 파산했고 Netflix는 2천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고객은 해결책을 모를 수 있지만, 문제는 안다

고객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지 못할 뿐이다.

Blockbuster 고객들이 원한 것은 “가까운 매장”이 아니라, “원하는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Netflix는 그 본질을 정확히 읽어냈다.


Dropbox의 교훈: 문제를 시각화하라

Drew Houston은 클라우드 파일 동기화 서비스 Dropbox의 창업자다. 그는 버스 안에서 USB를 두고 온 경험을 반복하며 불편을 느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클라우드 동기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Dropbox의 비디오

 

그러나 투자자들은 냉담했다. “이미 비슷한 서비스가 많다.”

Houston은 완성된 제품 대신 3분짜리 데모 비디오를 만들었다. 그가 직접 만든 시연 영상은 Hacker News에 올라온 지 하루 만에 5,000명의 대기자 명단을 75,000명으로 늘렸다. 사람들은 “클라우드 동기화 서비스”가 뭔지 몰랐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장면을 보자마자 반응했다.

그는 고객에게 묻지 않았다. “이 기능이 필요하십니까?” 대신 보여줬다. “이 문제는 이렇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완벽함의 함정: 모든 피드백을 다 들으려는 욕망

10명의 고객이 있으면 10가지 다른 의견이 나온다. “이 버튼을 바꿔주세요.” “이 색깔이 더 좋아요.” “이 기능을 추가해주세요.” 모든 피드백을 반영하려다 보면 제품은 복잡해지고, 핵심은 사라진다.

Dropbox는 오직 한 문제에 집중했다. “한 폴더에 파일을 넣으면 모든 기기에서 자동 동기화된다.” 그 단순함이 성공의 열쇠였다.


고객의 말보다 행동을 보라

고객은 말보다 행동으로 진실을 드러낸다. 그들이 어떤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지, 어디서 이탈하는지,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를 관찰하라. 그 데이터가 말보다 훨씬 정확하다.

Netflix는 사용자의 시청 패턴과 별점 데이터를 분석해 추천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그들이 직접 “이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행동은 이미 답을 주고 있었다.


고객 중심 vs 고객 주도

Amazon의 제프 베이조스는 “고객 중심(customer-centric)”과 “고객 주도(customer-driven)”를 구분했다. 고객 중심은 고객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고객 주도는 고객이 요청하는 대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전자는 혁신을 낳고, 후자는 평범함으로 귀결된다.


New Coke의 교훈

1985년 Coca-Cola는 소비자 조사 결과에 따라 더 달콤한 맛의 ‘New Coke’를 출시했다.

 

New Coke의 역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 반발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던 코카콜라를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단순했다. 설문조사는 즉각적인 맛의 선호만 측정했다. 하지만 Coca-Cola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추억과 정체성의 상징이었다. 소비자들은 더 달콤한 맛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익숙함과 전통을 원했던 것이다.


혁신의 역설: 고객이 요구하지 않은 것을 만들기

  • 1976년, 아무도 개인용 컴퓨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Apple I이 세상을 바꿨다.
  • 2001년, MP3 플레이어는 넘쳐났지만 iPod은 ‘1,000곡을 주머니에’라는 문장으로 시장을 재정의했다.
  • 2007년, 키보드 없는 iPhone은 비웃음의 대상이었지만, 결국 휴대폰의 개념 자체를 바꿨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그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창조자들은 고객이 겪는 근본적인 불편함을 정확히 보았다.


MVP의 진짜 의미: 학습을 위한 최소한의 제품

MVP(Minimum Viable Product)는 ‘대충 만든 제품’이 아니다. Eric Ries가 정의한 MVP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검증된 학습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이다. 완성도가 아니라 학습이 핵심이다.

Dropbox의 비디오는 이 원칙의 완벽한 사례였다. 코드 한 줄 쓰지 않고, Houston은 “이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며, 사람들은 해결책을 원하고, 돈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세 가지를 증명했다.


데이터 주도 vs 데이터 알림

Netflix의 전 CPO Gibson Biddle은 “데이터 주도(data-driven)”가 아니라 “데이터 알림(data-informed)”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터는 결정을 ‘돕는’ 것이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 중심 vs 고객 주도

 

Facebook은 뉴스피드를 도입했을 때 거센 반발을 받았다. 단기 데이터만 봤다면 기능은 폐기됐을 것이다. 그러나 Zuckerberg는 장기적 비전을 선택했다. 몇 주 후, 뉴스피드는 Facebook의 핵심 기능이 되었다.


고객 피드백의 3단계

  1. 기능 요청: “이 버튼을 파란색으로 바꿔주세요.” — 표면적인 요구.
  2. 워크플로우 불편함: “이 기능을 쓰려면 너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해요.” — 사용 맥락의 단서.
  3. 근본적인 문제: “팀 협업할 때 항상 버전이 꼬여요.” — 혁신의 출발점.

스타트업은 3단계의 문제를 찾고, 2단계의 패턴을 관찰하며, 1단계는 대부분 무시해야 한다.


고객의 목소리와 창업가의 비전 사이에서

고객의 말을 듣되,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들이 겪는 ‘문제’를 들어야 한다. 고객의 행동을 관찰하되, 단기적 반응이 아니라 근본적 필요를 봐야 한다. 데이터를 활용하되, 데이터가 아닌 비전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해결책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불편은 명확히 알고 있다. 창업가의 역할은 그 불편을 깊이 이해하고, 고객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의 진짜 말처럼, “성공의 비밀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에 있다. 고객의 말을 듣되, 그 말 뒤에 숨은 진짜 의미를 읽어라. 그것이 완벽함의 함정에서 벗어나 진짜 가치를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