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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행진 (Sheep Parade)/제2장: 고객의 배신

알고리즘이 못 보는 0.1%

 

 

2-3 알고리즘이 못 보는 0.1%의 신호: 데이터 너머의 경영 전략

AI와 빅데이터가 경영의 필수 도구가 된 시대, 모든 기업이 동일한 데이터를 보고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 차별화는 사라지고, 혁신은 정체되며, 시장은 평준화된다. 진정한 경쟁 우위는 데이터가 보여주는 평균이 아닌, 알고리즘이 버린 0.1%의 신호에서 탄생한다.

1. 고객이 말한 것을 그대로 만드는 순간 시장은 식는다

기업은 언제나 고객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고객 중심 경영,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고객 피드백의 즉시 반영, 이 모두가 상식이 된 시대다. 그러나 시장의 역사는 역설을 말한다. 고객의 언어를 그대로 반영한 기업은 빠르게 성장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평준화된다.

고객이 말하는 것은 이미 의식화된 욕구다. 그 욕구는 다수의 기업이 동시에 인지하는 과거형 수요다. 기업이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다. 고객의 언어는 언제나 현재의 불편을 설명한다. 하지만 혁신은 미래의 가능성을 설계하는 일이다.

 

사례: 삼성전자 갤럭시 폴더블폰

삼성전자가 폴더블폰을 출시했을 때, 소비자 조사는 더 얇고 가벼운 제품을 원한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그러나 삼성은 그 언어 너머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용 경험이라는 잠재 욕구를 읽었다.

초기에는 기능적 불편함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 시장은 다르게 반응했다:

  • 2021년: Z폴드3/플립3 출시로 전년 대비 4배 판매 증가
  • 2022년: 연간 약 1,049만대 판매로 최대 실적 기록
  • 2023년: 시장 점유율 66.4% 달성
  • 2024년: 중국 업체 경쟁 심화로 점유율 하락했으나 여전히 시장 선도

출처: TrendForce, Counterpoint Research 2023-2024

단, 2024년 이후 폴더블폰 시장은 성장 둔화 및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구성 문제, 높은 가격, 중국 제조사의 공세 등이 주요 요인이다. 이는 혁신 이후의 대중화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성숙기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이 사례는 고객의 말보다 고객의 무의식적 기대를 읽는 것이 경영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경험 후에야 그것이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업의 역할은 바로 그 깨달음 이전을 설계하는 것이다.

 

빙산 - 말하는 욕구 vs 숨겨진 욕구

 

2. 알고리즘은 평균의 종교다

 

오늘날의 경영은 데이터를 신처럼 숭배한다. 데이터는 분명 강력하다. 그러나 데이터의 본질은 평균화다. 알고리즘은 다수의 행동을 수집하고, 그 안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패턴을 찾는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장 가능성 높은 선택지로 추천한다.

이 구조 속에서 소수의 행동, 예외적 선택, 감정적 반응은 대부분 노이즈로 처리된다. 하지만 혁신은 언제나 그 노이즈에서 태어난다.

 

 

데이터 속 숨겨진 인간

사례: 스타벅스코리아 사이렌 오더

2014년 스타벅스코리아가 도입한 사이렌 오더는 단순한 모바일 주문 시스템을 넘어선 혁신이었다. 고객들은 줄이 길다, 주문이 복잡하다고 불평했지만, 스타벅스는 그 언어 뒤에 있는 시간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을 포착했다.

앱 주문과 즉시 픽업이라는 경험은 효율성을 넘어 통제감을 제공했다:

  • 2014년 도입 당시: 일평균 2,000건
  • 2016년: 누적 1,000만건 돌파
  • 2020년: 누적 1억건 돌파, 전체 주문의 22%
  • 2022년 6월: 누적 3억건 돌파
  • 2024년 6월: 누적 5억건 돌파, 전체 주문의 35%
  • 앱 사용자 중 54%가 사이렌 오더 이용

출처: 스타벅스코리아 공식 발표, 2014-2024

 

알고리즘은 이런 감정을 포착하지 못한다. 데이터상으로는 줄이 길다는 불편과 앱으로 미리 주문한다는 해결책 사이에 직접적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 변화의 본질은 고객의 자율성에 있다. 알고리즘은 상관관계를 본다. 그러나 경영자는 인과관계를 읽어야 한다.

3. 알고리즘이 못 보는 0.1%의 신호: 국내 기업 사례들

배달의민족: 감성 브랜딩의 차별화

배달의민족의 브랜딩 전략은 이 개념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2015년부터 치믈리에 자격시험, 배민체, 우리말 사랑 캠페인 등 감성적 브랜딩에 집중했다. 겉으로 보면 데이터와 무관한 시도였지만, 실제로는 고객이 속도가 아니라 즐거움을 원하고 있음을 읽은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배민은 가격 경쟁 대신 문화적 친밀감으로 시장을 주도했다. 유머와 언어의 감각을 데이터화하기는 어렵지만, 바로 그 감정이 충성도를 만든다.

 

노이즈 속 0.1% 신호 발견

사례: 무신사 커뮤니티 기반 성장

2001년 스트리트 패션 사진 게시판으로 시작한 무신사는 커뮤니티 문화를 유지한 덕분에 단순한 플랫폼 이상의 관계를 만들었다.

  • 2019년 거래액: 9,000억원
  • 2020년 거래액: 1조 2,000억원
  • 2021년 거래액: 2조 3,000억원 (거래액 2조 시대)
  • 2022년 거래액: 3조 4,000억원
  • 2023년 매출액: 8,830억원 (별도 기준)
  • 2024년 거래액: 4조 5,000억원
  • 회원 수: 1,000만명 이상 (2022년 기준)

출처: 무신사 공식 발표, 각 연도 IR 자료

이 성장의 핵심은 사용자가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가 상품의 신뢰를 만든다는 순환 구조였다. 고객이 직접 찍은 사진, 착용 후기, 댓글 문화는 알고리즘이 정제하기 힘든 비정형 데이터였다. 그러나 무신사는 이를 시스템으로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남겼다. 불완전하지만 진짜 같은 경험이 브랜드의 신뢰로 전환된 것이다.

사례: 토스 심리적 편안함 설계

2015년 송금 서비스 출시 당시 고객 설문 결과는 수수료 무료가 핵심 니즈였다. 그러나 토스는 사용자가 실제로 불편을 느끼는 지점이 송금 과정의 심리적 긴장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앱 인터페이스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고, 시각적 피드백을 통해 심리적 피로를 줄였다. 고객은 수수료보다 돈을 주고받는 행위가 부담스럽지 않은 경험을 더 크게 인식했다.

2021년 토스는 평생 무료 송금을 선언했지만, 이미 그 전에 사용성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한 상태였다. 금융 앱 누적 다운로드 수 1위를 차지하며 핀테크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세 기업은 공통적으로 고객이 말한 언어보다 고객이 느끼는 맥락을 관찰했다. 알고리즘이 평균을 계산할 때, 이들은 평균의 바깥을 탐색했다.

4. 0.1% 전략의 실천 방법

이제 문제는 어떻게 이 감각을 조직의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느냐다.

관찰의 깊이를 제도화하라

고객 데이터를 분석할 때 왜 이 행동이 일어났는가를 해석하는 절차를 넣어야 한다. 단순한 상관관계 대신 인과 구조를 찾는 훈련이다. 예컨대 고객이 앱을 종료한 이유를 이탈로 정의하기보다, 그 시점의 감정 상태를 가설로 설정하고 검증해야 한다.

희소 데이터의 가치를 인정하라

보통 5% 미만의 표본은 유의하지 않다며 폐기된다. 그러나 혁신은 바로 그 5% 안에서 시작된다. 배달의민족의 치믈리에 캠페인은 처음엔 마케팅 예산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실험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실험이 브랜드 자산의 핵심이 되었다.

실험을 작게 반복하라

시장 전체를 바꾸려 하지 말고, 고객의 특정 감정에만 초점을 맞춘 실험을 설계하라. 토스의 초기 송금 UI는 6개월간 30차례 수정됐다. 각 수정은 작은 감정 포인트, 버튼 색, 진동 타이밍, 잔액 표시 방식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고객의 언어 대신 반응을 관찰하는 접근이다.

데이터와 직관을 연결하라

감각은 데이터의 반대편이 아니라 보완재다. 무신사가 사용자 콘텐츠를 알고리즘으로 정리하지 않은 이유는 데이터의 불완전성이 브랜드의 진정성으로 작동한다는 통찰이었다. 숫자는 방향을 제시하지만, 해석은 인간의 몫이다.

 

데이터와 감정의 조화

5. 데이터 이후의 경영: 감정과 맥락의 시대

 

AI와 데이터는 경영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효율이 완벽해질수록 감정이 경쟁력이 된다. 소비자는 이제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산다. 그 경험은 숫자가 아니라 서사로 설명된다.

삼성의 폴더블폰,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 배민의 유머, 무신사의 커뮤니티, 토스의 심리적 편안함, 이 모두는 기능이 아니라 감정으로 고객을 설득한 사례다.

이제 경영자는 데이터를 읽는 사람을 넘어 데이터를 의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숫자가 이 방향이 옳다고 말할 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루한가라고 묻는 감각이 필요하다. 시장은 정확성으로 유지되지만, 혁신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알고리즘은 평균을 추구하고, 경영자는 예외를 찾아야 한다. 평균의 전략은 시장을 안정시키지만, 예외의 전략은 시장을 움직인다. 고객이 말하지 않은 욕구,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한 감정, 알고리즘이 버린 노이즈, 그 0.1%의 틈에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한다.

 

 

결국,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만드는 기업은 고객의 뒤를 걷는다. 하지만 고객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발견한 기업은 시장의 앞을 달린다. 알고리즘이 못 보는 0.1%, 그 미세한 신호를 감지하는 기업만이 다음 시대의 리더가 된다.

 

이 글에서 제시한 사례들은 성공의 순간을 포착한 것이며, 각 기업은 현재도 시장 변화와 경쟁에 직면해 있다. 폴더블폰 시장의 성장 둔화, 배달 플랫폼 간 경쟁 심화, 패션 커머스의 수익성 압박 등은 혁신 이후의 현실적 과제다. 데이터를 넘어선 통찰은 시작이지 종착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