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롤링스톤이 박힌 돌을 이기는 이유
한때 산업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완벽함’. 더 빠르고, 더 정교하고, 더 오류 없는 시스템이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완벽은 더 이상 성장의 엔진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소거하는 장치가 되었다. 서비스는 매끄럽지만 따뜻하지 않고, 제품은 정확하지만 감동이 없다. 고객은 효율의 세계 속에서 점점 더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이 브랜드와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고객은 이미 마음이 떠난다. 산업이 완벽함으로 스스로를 닫아갈수록, 인간은 감정이라는 통로로 그 틈을 연다. 그리고 바로 그 틈으로 ‘굴러온 돌’이 들어온다.
완벽보다 따뜻함을 택한 브랜드들
‘박힌 돌’은 시스템을 믿었다. 수많은 절차와 표준, 내부 평가 지표가 그들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하지만 그 단단함은 곧 무게가 되어 변화를 늦췄다. 반면 ‘굴러온 돌’은 시스템보다 감정에 민감했다. 기술보다 고객의 표정을 먼저 보았다. 완벽한 절차가 불러오는 불편함, 정밀한 기술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을 감지했다.

산업이 완벽을 향해 달릴 때, 그들은 인간의 감정이 비워진 자리를 비즈니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토스의 등장은 그 변화를 상징한다. 송금은 이미 완벽한 기술 시스템이었다. 0.01초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고, 오류율은 거의 0에 가까웠다. 하지만 고객은 여전히 불안했다. “혹시 잘못 보냈으면?” “계좌번호가 틀리면?” 은행은 이 불안을 절차와 인증으로 막았다. 그러나 절차는 오히려 불편을 낳았다. 토스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으로 접근했다.
화면 색상, 버튼 움직임, 문장 어조, 송금 완료 후의 진동까지. 모든 요소를 인간의 불안을 다독이는 언어로 바꿨다. 고객이 느낀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안심’이었다. 토스는 송금 서비스를 만든 게 아니라, ‘감정의 신뢰’를 만든 것이다.
카카오뱅크는 제도의 언어를 대화의 언어로 바꿨다. 오랫동안 은행은 신뢰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거리감의 상징이기도 했다. 높은 창구, 복잡한 용어, 서류의 언어가 고객을 ‘심사받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카카오뱅크는 말했다. “이체 승인” 대신 “보내기”, “대출 심사 중” 대신 “확인하고 있어요.” 고객이 쓰는 일상의 언어로 금융을 번역했다.
그 순간 은행은 기관이 아니라 ‘대화 상대’가 되었다. 2017년 출범 후 2년 만에 천만 고객을 확보했고, 2024년에는 2,3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은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뢰의 시대가 끝나고 ‘친밀함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배달의민족은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에서 감정의 무기를 들었다. 배달앱의 전쟁터는 늘 속도와 가격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배민은 전혀 다른 언어를 선택했다. “치믈리에 자격시험”, “오늘은 치킨각”, “이 집은 전설이야.” 짧은 유머 한 줄이 고객의 피로를 녹였다. 유머는 정보보다 빠르고, 논리보다 오래 남는다. 배민은 ‘서비스’가 아니라 ‘분위기’를 팔았다. 결국 배민은 플랫폼이 아닌 ‘생활 감정 플랫폼’이 되었다.
무신사는 커뮤니티가 브랜드로 진화한 대표 사례다. 2001년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무신사는 후기, 댓글, 사진이 브랜드의 언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구매하지 않았다. 공유하고, 농담을 나누고, 서로의 취향을 공감했다. “무신사에서 옷을 산다”가 아니라 “무신사에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말 속에는 패션이 정체성의 언어로 바뀐 시대가 담겨 있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Bespoke)’는 기술이 감정을 배운 사례다. 냉장고는 오랫동안 기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고객은 묻는다. “이 제품이 우리 집에 어울릴까?” 삼성은 그 질문에 기술이 아닌 감정으로 답했다. 색상, 소재, 손잡이, 모듈을 고객이 조합할 수 있게 했다. 완벽한 기능 위에 ‘감정의 선택권’을 더한 것이다. 2021년 삼성은 “가전은 공간의 언어가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기술의 시대가 감정의 시대로 넘어간 순간이었다.
HYBE와 BTS는 감정이 산업을 넘어 세계를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완벽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던 K-pop 산업에서, 그들은 ‘불완전함’을 선택했다. 실수를 감추지 않았고, 인간적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팬들은 그 진심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하이브는 음악이 아니라 ‘관계’를 중심에 두었다. 병역 공백기에도 팬 커뮤니티 ‘Weverse’, 온라인 콘서트, 팬 페스타로 감정의 연결을 유지했다. 2026년 재결합이 발표되었을 때, 팬들은 그것을 단순한 ‘컴백’이 아닌 ‘감정의 귀환’으로 받아들였다.
감정을 경영하는 시대
이 여섯 브랜드는 산업은 달라도 공통의 전략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감정을 경영한다. 토스는 불안을, 카카오뱅크는 말투를, 배민은 유머를, 무신사는 소속감을, 삼성은 공간을, 하이브는 기다림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고객의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의 망설임’을 읽었다. 시장은 논리로 설명되지만, 선택은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왜 박힌 돌은 변하지 못했는가
박힌 돌은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혁신은 언제나 예외에서 태어난다. 알고리즘은 평균을 계산하지만, 고객의 마음은 평균 밖에서 움직인다. 리뷰에 남지 않은 불만, 결제 직전의 망설임, 앱을 닫기 전의 1초. 그 미세한 감정의 떨림이 바로 다음 시장의 신호다. 굴러온 돌은 그 떨림을 듣는다.
모든 기업이 데이터를 본다. 그러나 데이터는 누구나 해석할 수 있는 공용어다. 진짜 차이는 감정을 읽는 능력에서 나온다. 완벽함의 시대가 효율의 시대였다면, 감정의 시대는 관계의 시대다. 고객은 품질보다 “나를 이해하는 브랜드”를 원한다. 완벽함은 신뢰를 만들지만, 감정은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시장은 언제나 ‘관계가 있는 쪽’의 편이다.
완벽보다 따뜻한 브랜드가 이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이긴 이유는 더 빨랐기 때문이 아니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객의 말이 아니라 침묵을 들었다. 기술이 아닌 감정을 설계했다. 완벽한 시스템은 닫혀 있지만, 감정은 흐른다. 시장은 흐름을 따른다. 완벽함은 정답을 주지만, 감정은 관계를 만든다. 고객은 결국 정답보다 관계를 선택한다.

이제 기업이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온도’다. 고객이 브랜드를 떠나는 이유는 기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정이 식었기 때문이다. 신뢰는 데이터를 쌓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주고받으며 쌓인다. 고객이 ‘무엇을 사고 싶은가’보다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를 묻는 기업만이 다음 시장을 연다. 완벽함은 안정적이지만, 감정은 생명력이 있다. 박힌 돌은 완벽하지만 외롭고, 굴러온 돌은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이다. 고객은 결국 인간적인 쪽을 택한다. 그래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이긴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더 따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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